1. 안금이 이야기의 전말
임진왜란과 위패의 위기
고려 건국의 일등 공신인 안동의 삼태사(김선평, 권행, 장정필)를 모신 사당인 안동 태사묘(太師廟)에는 당시 문지기(묘지기) 역할을 하던 안금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3년간의 지극한 봉심(奉審)
모두가 도망친 상황에서도 안금이는 태사묘 어른들의 위패가 훼손될 것을 깊이 걱정했습니다. 그는 삼태사의 위패를 품에 모시고 안동 길안면 국란(혹은 깊은 산속)으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포상 거절과 소박한 소원
임진왜란이 평정되고 사람들이 안동으로 돌아온 후, 삼태사의 위패가 무사하며 그동안 안금이가 지극한 정성으로 제사를 모셨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신분이 낮았던 안금이는 "저는 벼슬을 할 자격도, 요구할 생각도 없습니다"라며 거절했습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예우
조정과 지역민들은 그의 소박하고 갸륵한 마음에 감동하여 그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현재 안동 태사묘 안에는 '안묘당(安廟堂)'이라는 작은 사당이 있으며, 방 두 개 중 하나가 바로 '첨지 안금이'의 사당입니다.
2. 관련 출처 및 문헌 자료
이 이야기는 구비문학(전설) 채록 자료와 향토 사료, 그리고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두루 교차 검증됩니다.
안동시청 향토사료 (구비문학 채록본)
자료명: 《인물전설 - 삼태사의 위패를 지킨 안금이》
내용:
위키백과 및 백과사전 류
자료명: 위키백과 '안동 태사묘' 항목
내용:
언론 및 향토문화 보도 자료
경북일보 (2010년 3월 11일 자): 《후삼국통일 주역 '삼태사' 정기 고스란히 묻어나》 기사.
영남일보 (2016년 2월 19일 자):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안동 태사묘》 기사.
대구일보 (2010년 3월 17일 자): 《<대구논단> 몸은 비록 종(奴)이라 할지라도》 칼럼. 포악한 왜인들로부터 위패를 지킨 천민 안금이의 충의를 다루었습니다.
This content is being translated.
This content is being translated.
This content is being translated.
This content is being translated.